비가 내리고 있었다. 매말라버린 겨울에 내릴리 없는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. 하지만 나는 그러한 상황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.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, 한줌의 추위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. 하지만 내 무의식 깊은 곳에는 답이 있었다. 알고 있으면서도, 알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.
꿈에서 깨면 머리가 아파왔다. 깊은 아쉬움이 휘몰아쳐왔다. 두 손에 가득히 잡혔던 무색투명한 것들이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자취를 감췄다. 그리고 잊혀지기 시작한다. 그러면서도 한 사람의 모습만큼은 점차 선명하게 뇌리에 그려졌다. 비가 내리는 그곳에서만, 나는 울 수가 있었다. 그리움에 목놓아 울 수가 있었다. 그리고 기억할 수가 있었다.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를 볼 수 있는 그 유일한 시간을 붙잡기 위해서 발버둥쳤다.
시간을 되돌리며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.
지독하게도 우울한 회색빛의 하루를 만들어내는 악몽. 그것은 마치 악몽 속의 배경과도 같았다. 지독하게 우울한 장맛비가 쏟아져내리는 여름의 회색빛 도시. 그리고 그 도시를 빛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검은 구름의 커텐.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 삼중의 커텐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일련의 빛. 검은 구름을 투영한 빛은 회색빛 도시를 더욱 철저하게 명암에 따라 가른다.
그 장엄한 광경이란!
두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. 그래서 그 당시의 나는 강렬한 바람을 담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. 절대로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기를! 다시는 볼 수 없을 이 순간을 영원토록 기억하기를!
그랬다.
나는 그 광경을 봤기 때문에 악몽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.
그 생각을 하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그 다음의 사건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. 비가 그쳐가는 공원에서 검은 구름조차 사라져 환한 빛의 세상이 열려있는 하늘을 바라보면서, 쓰고있던 우산 너머로 손을 꺼내 얼마만큼의 빗방울이 떨어지는지 확인하던 차에 갑자기 든 생각.
그 생각에 행복을 손에 쥐고 걷고 있던 발걸음이 갑작스러운 불안에 멈춰버렸다.
그리고 무엇에 홀린 것처럼, 나는 이번에도 그 장엄한 광경을 함께한 그 아이에게 '다시' 물어보았다.
"이건 현실이야?"
그 말을 꺼내는 순간 악몽임을 깨닫게 만드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.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웃음소리. 손끝에서 느껴져오는 오감을 집중해 세상을 둘러봐도 바뀌지않는 현실에 당황해서, 당장이라도 멈춰버릴 것처럼 쿵쾅대는 심장과 떨려오는 몸. 믿을 수 없다는 두려움에 물들어버리는 나. 손끝의 감각을 느끼던 내가 그 아이를 향해 눈을 마주했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무의식 중에 가둬두었던 사실들이 절망으로 정신을 물들여나가는 것을 느꼈다.
빗방울이 우산에 가로막혀 우산살을 따라 모여서 방울방울 맺혀 떨어지던 그 순간에도, 내가 붙잡을 수 있는 현실인가를 다시 가늠하면서 절망에 물들어갔다. 그러다 문득, 이런 생각이 들었다.
내 두려움과 함께 지쳐버린 열정을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.
끝없이 이 꿈을 붙잡으려는 욕심에도 결국 이 세상은 거짓에 불과한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. 이미 깨달아버렸는데도, 그래도 나는 갈등했다.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은 헛된 희망에 몸부림쳤다.
달려가 꿈 속의 그 아이를 끌어안고 울었다. 꿈 속에서 메워진 이 거리가, 현실에서는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멈춰가던 빗소리가 다시 내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눈물과 오열을 숨길 때, 나는 소원했다.
세상에 만약 마법이 있다면.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져버린 운명조차도 꿰뚫고, 시간마저도 흐른적 없는 것마냥 되돌릴 수만 있다면. 나는 이처럼 허상 속에서 매번 시간을 되돌리는 악몽을 꾸지 않아도 될텐데.
너와 함께 보았던 그 장엄한 광경까지만을 기억하려하지 않을텐데.
그 하루를, 너와 함께 했던 시간으로만 기억할텐데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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Blog.Start.2010.02.04.12:30AM


